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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심청, 신데렐라, 선녀’…동화, 여성의 목소리를 찾다

입력 2019.12.03 12:00

여성 역할 재해석한 동화, 역할 바뀐 웹툰ㆍ웹소설
새로운 여성 서사 반영 흐름 도도
웹툰 '그녀의 심청'의 한 장면. 위즈덤하우스 제공

고전 동화 속 등장인물은 단순하다. ‘착한 여성과 나쁜 여성, 그리고 멋진 남성’. 여성은 착해야만 멋진 남성의 선택을 받을 수 있고, 이유 없이 주인공을 괴롭히는 나쁜 악역 여성은 벌을 받는 구조다.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는 착한 여성만이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환상을 주입했다.

최근 동화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페미니즘이 사회 흐름의 한 축이 되면서 성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기존 동화에 문제의식을 느낀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나무꾼을 단죄하는 선녀부터 성공한 사업가가 된 신데렐라까지. 평면적이기만 했던 동화 속 여성들이 주체적인 인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동화, 웹툰, 웹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여성 서사로 재탄생한 동화들을 만나보자.

◇동화 ‘선녀는 참지 않았다’
구오 작가 '선녀는 참지 않았다'. 한국 전래 동화 열 편을 재해석했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나무꾼은 선녀의 날개옷을 훔치고, 선녀는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 채 나무꾼과 혼인한다. 진실을 안 선녀는 그를 버리고 천상으로 떠난다. 우리가 익히 알던 ‘선녀와 나무꾼’의 서사다. 놀랍게도 우리는 선녀가 아닌 버림받은 나무꾼에게 연민을 느낀다. 선녀의 불행은 나무꾼으로부터 시작된 것인데도 말이다.

구오 작가의 동화 ‘선녀는 참지 않았다’는 동화를 읽으며 한 번쯤 의문을 가졌을 법한 요소들을 전복시킨다. 기존 동화의 여성 인물들은 위기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새로 쓰인 동화 속 여성들은 다르다. 새로운 동화의 여성들은 위기를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주체적 인물로 성장한다. 선녀는 나무꾼과 결혼하는 대신 다른 선녀들과 힘을 합쳐 그를 단죄하고, 천상으로 가 평탄한 삶을 이어간다. 차별과 편견을 부수는 ‘사이다’ 같은 새 동화는 독자들의 지지를 얻었고, 후원 플랫폼인 텀블벅을 통해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웹툰 ‘그녀의 심청’
seri 작가의 웹툰 '그녀의 심청'. 심청전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연대와 사랑을 다룬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기존 동화를 전복하는 시도는 웹툰과 웹소설에서 더 두드러진다.

‘2018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하며 여성 서사 웹툰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한 seri 작가의 ‘그녀의 심청’은 고전 심청전을 재해석했다. 웹툰 플랫폼 저스툰에서 2017년 9월부터 연재된 작품은 평면적이었던 원작의 여성을 입체적으로 부각하고, 사회적 억압을 이겨내려 하는 그들의 연대와 사랑을 그린다. 기존 고전에서 심청은 공양미를 주겠다는 주 승상 부인의 제안을 거부하고, 인당수에 뛰어들었다. 효를 위해 어떤 행동도 서슴지 않는 고전적 인물로 그려진 것이다. 하지만 웹툰에서의 심청은 다르다. 눈만 뜨면 부자가 되겠다는 아버지를 믿지 않고, 절망적인 삶을 벗어나고 싶어 죽음만을 꿈꾸는 현실적 인간이 된다. 꽃으로만 살아왔던 주 승상 부인과 죽지 못해 살아야 했던 심청은 서로를 만나 변화하고, 고난에도 주저앉지 않는 삶의 주체로 거듭난다.

◇웹소설 ‘신데렐라를 곱게 키웠습니다’
키아르네 작가의 로맨스판타지 소설 '신데렐라를 곱게 키웠습니다'. 계모 밀드레드가 신데렐라와 두 의붓언니를 주체적 여성으로 성장시키는 이야기다. 카카오페이지 제공

한국 동화는 물론 어린이들의 선망을 받던 외국 동화도 변주의 대상이 된다. 키아르네 작가의 ‘신데렐라를 곱게 키웠습니다’는 유명 동화 신데렐라를 원작으로 한 웹소설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신데렐라도, 의붓언니들도 아닌 37세의 계모다. 기혼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부터 주로 젊은 미혼 여성만 주인공이었던 동화의 전형적 틀(클리셰)을 깬다.

신데렐라의 계모 밀드레드는 신데렐라를 구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의 보살핌 없이 자란 신데렐라를 성장시킨다. 신데렐라와 두 의붓언니가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어 갈등을 풀어간다. 밀드레드는 세 자매를 중세시대 억압으로부터 보호하고, 그들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지지를 보낸다. 어머니와 세 자매는 여성 연대를 통해 각자의 위치를 찾는다. 신데렐라는 유리 구두에 의지하는 대신 사업을 꾸려가고, 의붓언니 역시 돈을 벌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며 화가가 된다. 누군가의 아내로 남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네 여성의 모습은 차별에 맞서고 있는 현 시대 여성 독자들에게 힘이 되어준다.

정해주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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